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북아메리카 (문단 편집) === {{{#6d372d 캐나다}}} === {{{#red '''플레이 불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aiserreich&no=54521&page=1|업뎃 예고]][장기간]'''[* 자유당(LIB), 토리당(CP,보수민주주의-[[존 디펜베이커]]), 협동조합연방연맹(CCF,사회민주주의-토미 더글라스), SCP] * '''자유국가기구'''의 '''OFN 독립회원국''' * '''집권이념: 자유민주주의([[캐나다 자유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미국 경제권 소속국''' * {{{#!folding 국가 정신 * '''불확실한 헌법''' ||캐나다는 현재 불확실한 헌법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실제 캐나다 헌법이 런던의 협력 정부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때문에 캐나다는 본질적으로 애국 없이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새로운 헌법이 수년 동안 논의되어 왔으며, 주정부의 거부권 또는 하원의 교착 상태를 통해 끊임없이 통과가 실패하였습니다. 이것이 마침내 통과될 때까지 캐나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겁니다. 헌법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나라입니까?'''|| 매일 정치력 획득: {{{#red '''-0.15'''}}} 안정도: {{{#red '''-10%'''}}} 전쟁 지지도: {{{#red '''-15%'''}}} * '''[[닉슨 쇼크]]'''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캐나다는 유럽 국가의 두 주요 수출 파트너 중 하나에 접근할 수 없었고, 캐나다의 수출을 받는 곳은 미국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캐나다 경제는 본질적으로 미국 경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캐나다 또한 그렇습니다. 닉슨 행정부가 달러를 평가 절하하면서 캐나다 경제는 더욱 하락하는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이미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부 지방은 그 여파가 더 나쁩니다.|| 필요 소비재: '''10%''' 건설 속도: {{{#red '''-15%'''}}} 생산 효율성 한도: {{{#red '''-15%'''}}} 생산 효율성 성장: {{{#red '''-15%'''}}} GDP 성장률: {{{#red '''-0.15%'''}}} * '''망명중인 엘리자베스''' ||신이 여왕님을 보우하시길! 그녀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사망한 후 엘리자베스 2세는 캐나다뿐만 아니라 오래전에 죽은 영국과 그녀의 없어진 영연방의 여왕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녀는 영국 제도에 발을 들일 수 없었지만 협력자인 에드워드 8세가 그의 독일 꼭두각시 주인과 함께 런던에 앉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녀의 정당성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섬을 탈환할 실제 방법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합법적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복원이 헛된 꿈에 불과합니다.|| 안정도: {{{#green '''+5%'''}}} 전쟁 지지도: {{{#green '''+10%'''}}} * '''퀘벡 지위''' ||풍부한 문화를 가지고, 영국 장미 중 프랑스 백합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으로 유명한 퀘벡은 항상 캐나다 정치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들의 필요가 미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익사되었다고 느끼면서, 퀘벡은 오타와가 그 땅과 사람들의 유산을 존중하고 그들의 이익이 캐나다의 유산과 동등하다는 요구를 두 배로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이웃 지방. 정부가 평등에 대한 요구를 더 무시한다고 느끼면 {{{#red '''폭력적인 변화의 외침으로 목소리를 바꿀 수 있습니다...'''}}}|| * '''이질적인 서부의 지위''' ||오타와의 관료주의적 술책으로 멀리 떨어진 서부 지방은 온타리오 정치인들의 관심에서 뒷 순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동부가 서부에 비해 재정적 단계에서 더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서부는 그들의 부를 고갈시키는 병든 정책을 추구하는 것과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보다 실용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red '''잠재적으로 부유한 이 땅에서 정부의 권위를 훼손하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 * {{{#!folding 내각 * '''레스터 피어슨'''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1897년 온타리오에서 태어난 레스터 B. 피어슨은 그 세대의 가장 위대한 외교관들 중 한명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27년, 캐나다 외무고시를 높은 점수로 합격하며 피어슨의 공훈적인 경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캐나다 고등위원회에서 1935년 영국, 1942년 워싱턴으로 보낸 그의 전보로 그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외교경력의 정점에 도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을 재앙적인 제 2차 세계대전의 그늘 아래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 >연합왕국의 붕괴로 캐나다는 외교적으로 포류하게 되었고, 이 대문에 캐나다는 미국에 더 기댈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1946년 암울했던 시기에 자유주의 소속 하원의원으로 의회에 입성한 피어슨은 맥켄지 킹 외교부의 조력자로서의 꾸준한 모습을 보이며 그는 유망한 자유주의 정치가로 촉망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외교부는 10년의 기간동안 보수정부의 이념아래 외교부에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미국가의 강한 유대관계를 강조하고 자유세계의 방패로서 OFN을 강화했습니다. 비동맹 국가들에게 캐나다의 입지를 높이려 했던 그의 노력 덕분에 그는 1950년대에 들어서 구 대영제국 출신 정치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 >1958년 보수주의자들의 패배로 자유주의자들은 다시 사회 프로그램 플랫폼을 복구했고 레스터 B. 피어슨을 중심으로 OFN국가간의 협력을 증진시켰습니다. 전 세계는 과연 그가 캐나다를 더 밝은 미래로 인도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 '''[[레스터 피어슨]]''' 정부수반 * '''조르주 바니에르''' 외무장관 * '''윌터 고든''' 재무장관 * '''레오 카디외''' 내무장관 }}} * {{{#!folding 지휘관 * '''자크 덱스트라제''' 원수, '''3''', 4/2/3/3 * '''잭 밴스''' 장군, '''2''', 2/3/2/2 * '''램지 뮤어 위더스''' 장군, '''1''', 3/1/1/2 * '''돈. C 라우만''' 장군, '''1''', 1/1/3/2}}} ----- 지도자는 외교관 출신인 [[레스터 피어슨]]. 영국이 멸망하고 [[윈저 왕조]]를 비롯한 영국 망명자들이 눌러앉은 상황에서 미국에게 의존하는 상황. 캐나다인-영국 망명자-퀘벡인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카이저라이히|응]]?~~[* 대신 카이저라이히에서 미국은 극단주의자들의 준동 등등으로 인해 반드시 내전으로 치닫는데 캐나다 자치령이 직접 미국 내전에 개입해 민주주의 정부가 다시 질서를 확립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고 구 왕립 해군의 5분의 2 가까이 되는 전력이 따라온 데다가 모든 해외 자치령이 왕실에 충성하므로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있다. 아예 열강 취급인데 인력이 적은 것을 제외하면 왜 열강인지를 알 수 있다.] 좌익 퀘벡 무장단체인 [[https://en.wikipedia.org/wiki/Front_de_libération_du_Québec|FLQ(퀘벡해방전선)]]와 우익 퀘벡 무장단체인 FUNQ가 점점 성장하고 있다. 1968년 경 열리는 선거에서 [[피에르 트뤼도]]를 선택해 자유당 정부를 유지하느냐, 아님 [[존 디펜베이커]]가 이끄는 [[캐나다 보수당]]을 선택할지를 고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